맑은 호수 위에 드리워진 노란 꽃, 오늘 밤 이별 아쉽다
[주말엔 꽃] 조배머들코지 황근
마을마다 공동체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바위가 있다. 애기업개바위, 망부석, 문필봉, 코끼리바위, 촛대바위 등 이름도 다양한데. 제마다 독특한 전설을 품고 있다.
고향인 위미리에도 그런 바위가 있다. 위미2리 포구에 있는 조배머들코지 바위가 그렇다. 예전에 이곳에 우뚝한 바위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마을의 유력가문이 바위를 부셔버렸다고 한다. 일설에는 일본인 지관이 뒤에서 파괴를 사주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사실인데, 거기에 전설이 붙여졌다. 바위가 깨질 때 바위 밑에서 늙은 이무기가 피를 토하고 죽었고 그 일로 해서 마을에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다가 위미항 개발공사가 진행되면서 주변이 매립됐다. 공사장에서 날라 온 자갈과 흙이 조배머들코지 주변을 채웠다. 바다에 있어 운치가 있던 코지는 볼품없게 됐다.
그러다가 1997년에 주민들은 깨진 바위를 일으켜 세웠다. 바위를 복원해 마을의 정기를 바로세우겠다는 취지였다. 복원된 조배머들코지 바위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도 세워졌다.

그리고 2010년 경, 코지 주변을 파서 해수가 작은 호수를 복원했다. 특별한 재로를 사용한 건 아니고, 둘레로 웅덩이를 팠더니 지하를 통해 바닷물이 들고 난다. 호수의 높이는 해수면과 연동해서 만조시에는 높아지고 간조시에는 낮아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조배머들코지는 원형은 아니라도 원형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옛 모습에 가까워졌다.
며칠 전 조배머들코지를 다시 찾았는데, 활짝 핀 여름 꽃이 반겼다. 그중에서도 나리꽃과 황근 꽃이 도드라진데, 멋있기로는 황근 꽃이 으뜸이다. 예전엔 이곳에 없던 것인데 어떤 경로로 여기에 터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황근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여기에 심었을 것이다.
황근은 아욱과 무궁화속 낙엽성 관목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의 남부 해안가에 제한적으로 분포한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양영환 연구원이 지난 2001년에 발표한 ‘제주도 갯대추와 황근의 분포에 관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 황근 자생시는 표선면 세화리 해안,성산읍 오조리 식산봉 근처,성산읍 온평리,대정읍일과리, 구좌읍 김녕리 해수욕장, 한림읍 비양리 비양봉 등으로 확인됐다. 남원읍에는 확인된 자생지가 없었다. 조배머들코지 주변에 서식하는 황근은 누군가 이식한 것으로 짐작한다.
황근은 국내 자생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됐다.
6월에서 8월 사이 가지의 끝에서 한 송의 노란 꽃이 핀다. 꽃이 피는 모양이 무궁화와 비슷해서 노란 무궁화라고도 부른다. 수술은 여러 개인데, 많은 수술을 합쳐져서 길이 1.5 ∼ 2센티미터의 수술통을 이룬다. 암술은 5개의 암술머리고 갈라지는데, 수술통 가운데를 뚫고 나온다. 수술은 노란색이고 암술머리는 붉은색이다.

노란 꽃잎은 연초록 잎과 대조를 이루고, 꽃의 안쪽은 붉은 색을 띠어 꽃잎과 대조를 이룬다. 여러 모로 시선을 끌려고 애를 썼는데, 아쉽게도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진다. 다만 여름 두 달 남짓 꽃은 부지런히 피고진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늦은 가을이면 갈색으로 익는다. 나무의 껍질은 질겨서 밧줄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황근은 보호종인데, 옮겨심기는 잘 되는 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방산과 용두암 주변을 시작으로 최근까지도 황근 옮겨심기가 꾸준히 진행된다. 해안도로 개설과 해안가 건축 등으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황근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은 꾸준하다. 이런 추세면 황근은 제주도의 해안가 여름을 밝히는 식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복원된 조배머들코지에 이식한 황근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파란 하늘과 함께 노란 꽃 그림자가 잔잔한 호수에 드리워졌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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