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낼 수 있는 모든 맛 “이건 너무도 귀한 밥상”
[동네 맛집] 서귀포시 동홍동 ‘오리본가’
삼복더위라 해도 작년과 올해 더위는 유별나다. 기상청이 큰 비를 예보했지만, 더위를 날릴 만큼은 내리지 않았다. 이런 기세면 더위는 말복 너머까지 고속 직행할 것으로 보인다.

20대를 같은 학교에서 보낸 벗들이 오랜만에 뭉쳤다. 회원 한 명이 외국에서 잠시 귀국했기 때문인데, 고향에 머물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음식과 사람이 낯선 객지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고향에서 반가운 벗들과 함께 받아보는 밥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안다. 식탁에 둘러앉아 지난 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전하면, 잠시 나마 삶의 고달픔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서귀포 ‘오리본가’는 오리 코스요리가 제 맛이다. 코스요리 한 마리를 주문하면, 생오리 구이, 오리 주물럭, 샤브샤브, 메밀칼국수가 순서대로 나온다. 여유 있게 시간을 정해서 얘기를 나누며 코스를 다 거치면, 싱싱한 생고기부터 진한 국물요리까지 오리는 모든 맛을 다 내놓는다.

주문을 하면 둥근 돌판과 함께 반찬이 나온다. 반찬은 콩나물무침, 양파장아찌, 찐 단호박, 김치, 고사리무침, 순두부과 함께 쌈배추와 고추, 생양파, 팽이버섯 등이다. 코스요리와 함께 나오는 재료가 많아서 밑반찬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불판이 가열될 만하면 오리 생고기를 돌판에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양파와 팽이버섯, 고사리무침을 올려서 함께 굽는다. 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익어갈 때 고기와 양파향이 뒤섞여 코를 자극한다.
상추 한 장을 꺼내 그 위에 고기 한 점 올리고 된장 조금 찍어 먹으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마음까지 채운다. 테이블 주변에 고기 향이 짙게 깔리면 냄새에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차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술잔을 채우기 바쁘다.

그렇게 첫 번째 요리, 생오리 구이가 줄어들면서 돌판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종업원이 두 번째 요리를 담은 접시를 가져온다. 양념된 오리고기 접시 위에 콩나물과 부추가 수복하게 올려졌다. 고스란히 돌판 위에 올려놓으면 양념된 오리고기, 콩나물 부추가 제각기 제 소리를 내고 제 향을 풍기며 익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양념 오리는 짙은 갈색으로 변하고 콩나물과 부추는 숨을 죽인다.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 데 이건 밥을 부르는 맛이다. 그런데 세 번째 요리가 남아 있어서 밥을 먹는 건 참기로 했다.

세 번째 요리 샤브샤브, 오리 뼈를 우려낸 국물이 냄비에 담겨 올라온다, 거기에 배추와 버섯을 넣고 국물을 푹 끓인 후, 살을 얇게 발라낸 오리 살코기를 살짝 담갔다가 꺼내어 먹는다. 붉은 살코기가 뜨거운 육수에 들어가면 회색으로 변한다. 이걸 양념간장에 찍어서 먹으면 너무나 깔끔하고 담백한 맛과 느낌을 낸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전체 코스 중에 세 번째 요리가 가장 고급스럽다.
국물은 그렇게 계속 끓고 오리 살코기를 국물에 넣고 건져내기를 반복하는 사이, 국물은 완전한 진국이 된다. 메밀칼국수 면과 수제비 반죽이 국물에 잠수할 시간이다. 진득한 국물 속에서 칼국수 면과 수제비 반죽이 익어간다. 면이 익어 젓가락으로 건져 먹었는데, 이건 칼국수 중에 최고 맛이다. 배가 불러도 젓가락은 계속 면을 건져내고 있다. 최근에 귀국한 친구는 “이런 음식은 한국에서 밖에 먹을 수 없다.”라며 “나가면 다시 오랫동안 먹지 못할 거라 아쉽다.”라고 했다.
코스요리 전부를 다 비웠더니, 배가 무거워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배가 불러도 맛이 있고 분위기가 좋아 계속 먹게 되었다. 삼복더위 중에 중복을 이렇게 행복하게 보냈다.
오리본가
제주도 서귀포시 일주동로 8583, 1층 064-762-0849
오리 한 마리 코스요리 6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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