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가 급성장한 여정, 이 시장에 오롯이 새겨졌다

[강원도 기행] ② 속초관광수산시장

강원도 여행 이틀째 날, 주문진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일행은 속초로 향했다. 처음 방문한 곳이 속초광광수산시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말이라지만 시장에는 걸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렸고, 즐비한 가게마다 맛있게 보이는 음식이 눈과 코를 자극했다. 최근 몇 개월간 국내 대부분 시장이 지독한 불경기에 시달리는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풍경이다.


▲ 속초관광수산시장에 많은 사람이 몰린다. 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여행하기 좋은 재래시장에 이름을 올렸다.(사진=장태욱)

옥수수빵, 김밥, 감자전, 오징어순대, 닭강정 등 음식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빵을 찌고, 감자전을 지지고, 순대를 써는 모습에 생기가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속초는 강원도 양양군에 속한 ‘속초리’였다. 이후 마을이 성장하며 속초면, 또 속초읍으로 승격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은 일제강점기 이후 속초시가 걸어온 특별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 속초읍은 3.8선 이북에 속했기에 광복 이후 한국전쟁까지 5년 동안 북한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속초의 많은 청년들이 인민군으로 강제 징집됐는데, 낙동강전투에서 숨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속초 동명항은 북한이 남침 병력을 운송하는 기지 역할을 했다.




▲ 시장을 지날 땐 구경하고 냄새 맡는 것으로도 행복하다.(사진=장태욱)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은 동부전선에서 38선을 넘어 1951년 5월, 고성지역까지 복했다. 미군은 속초를 수복하고 이곳을 군수지원 거점지역으로 활용했다. 동부전선에 가깝고 대형선박이 정박하기 용이한 해변이 있기 때문이었다.

군수조달과 군후생산업에 많은 민간인이 고용됐다. 생선을 잡아 군에 납품하고 원산으로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일은 민간인의 몫이 되었다. 미군정은 수산업 진흥을 위해 어민들에게 로프와 와이어, 명태 그물 등 구호물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전쟁을 피해 이남으로 내려왔던 사람들에게 속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정착지였다.

수복된 속초에 남쪽으로 피난 간 원주민들과 이북에서 월남한 피난민들이 속초로 몰려들었다. 당시 수복지역인 속초, 양양 일대는 1951년 8월 공식으로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미군정은 1953년 7월, 휴전 이후에도 지속되다가 1954년 11월이 되어서야 행정권이 대한민국에 이양됐다.


▲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생활을 담은 모형(속초시립박물관 내 실향민문화촌)

전쟁이 끝나자 속초에는 군수 특수는 사라졌다. 그와 맞춰 수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명태와 오징어가 풍부한 속초일대 바다에서 어부들은 호황기를 제대로 누렸다. 1950년대 말 속초의 어획고는 부산에 2위를 차지했다. 이북에서 고기잡이를 했던 실향민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고기잡이를 위해 사람이 몰리면서 속초읍의 인구가 급증했다. 1963년 속초읍은 인구 5만명이 넘어 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미군정 주둔기에는 속초시 영랑동에 시장이 형성되어 활기를 띠었으나, 군수 특수가 사라지면서 시장이 침체에 빠졌다. 1953년 봄에는 군부대가 인력을 지원하고 상인회가 돈을 내서 지금의 중앙동 어판장 인근에 새로운 점포를 갖춘 시장을 만들었다. 당시 시장이 속초리 3구에 속했기 때문에 ‘3구 시장’이라 불리었다.


▲ 평화신문 1959년 10월 29일자 기사. 당시 화재를 보도했다.

그런데 1959년 10월, 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상인들은 점포들이 불에 타버리는 아픔도 겪었다. 피해액이 당시 돈으로 60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컸다. 1964년에 시장을 건물을 추가로 짓는 공사를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1966년 속초가 시로 승격했고, 시장이 있는 곳이 ‘중앙동’에 속해 시장의 명칭은 중앙시장으로 바뀌었다. 속초가 수산업으로 명성을 떨칠 때, 중앙시장은 전국적인 수산물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 설악산 관광 붐이 일자 중앙시장을 더욱 활기를 띠었다.


1990년대 이후 재래시장이 쇠퇴하자 속초시는 2006년부터 시장활성화사업을 추진하고 속초중앙시장의 이름을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변경했다. 속초시의 시장활성화사업은 성공을 거둬, 속초관광수산시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여행하기 좋은 전통시장 10선’에 1호로 이름을 올렸다. 광주 양동시장, 단양 구경시장, 대구 서문시장 등도 함께 이름을 올렸는데, 제주도에서는 10선에 속한 시장이 없다.

문고 김승남 부회장과 식당에 자리를 잡고 감자전, 오징어순대를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징어순대가 맛있어서 꼭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용된 시간이 한 시간 남짓해서 급하게 일어서 버스로 돌아왔는데, 버스 안에 닭강정 박스가 더미로 쌓여 있었다. 여행하며 종일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맥주 좋아하는 주당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여행이 고소한 날이다.

** 새마을문고 서귀포시지부가 기획한 '길 위의 인문학 투어'에 참가했습니다. 행사를 마련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