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생활 마치고 제주로, 운명처럼 만난 제빵엔 인생과 예술 담았다
[서쪽가면] ① 디저트로 예술을 전하는 ‘제주포머스’ 최혜린 대표
제주도의 서쪽 끝, 한경면에선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그 중심엔 한경면에서 활동 중인 청년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로컬 네트워크 ‘서쪽가면이 있다. ‘서쪽가면’은 이름 그대로 제주 서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자 만들어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업자들이 힘을 모아 가려진 한경면의 매력을 알리고,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연재는 ‘서쪽가면’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삶과 철학을 들여다보는 기획이다. -필자 주 |

서쪽가면의 첫 번째 주인공은 제주 한경면 청수리에서 ‘제주포머스’를 운영하는 스물여덟 청년 최혜린 대표이다. 최혜린 씨의 삶은 다채롭다. 청소년 시절 싱가포르의 로컬 학교에서 공부했고, 대학생 시절부터 영어강사로 일했다. 졸업 후엔 싱가포르 에너지 기업의 한국 지사 설립 과정에 참여하며 영업직으로도 잠시 일했다.

제과 현장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녀는 더 전문적인 배움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프랑스 전통 베이킹 과정을 이수하며 제주로 돌아와 직접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제주포머스’다.
‘포머스(Pomace)’는 과일이나 채소를 짜고 남은 찌꺼기를 뜻한다. 그녀는 이 단어에 브랜드 철학을 담았다. 버려질 뻔한 재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제주포머스의 시작이었다. 대표 메뉴인 ‘당근박 머핀’은 인근 착즙 공장에서 갓 짜낸 당근에서 나온 신선한 당근박을 바로 활용해 만든다. 이는 지역 농가와의 협업이자, ‘업사이클링 디저트’로서의 가치 실현이기도 하다.
제주포머스의 특별함은 디저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이곳은 디저트와 예술, 가족의 이야기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최혜린 씨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미술 작업을 해온 작가다. 육아와 가족 돌봄으로 인해 한동안 창작 활동을 쉬어야 했지만, 지금까지 딸의 공간에서 작업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디저트 패키지에 어머니의 작품을 인쇄하는 방식으로, 디저트와 예술을 결합한 콜라보를 선보였다. 그녀는 꼭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했으면 좋겠다며 디저트와 아트의 콜라보를 통해 예술이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창업한지 9개월 차다. 처음엔 디저트 판매 위주였지만, 최근엔 키즈 영어 베이킹 클래스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영어 강사로 일했던 경력이 다시 빛을 발한다. 한경면은 제주영어교육도시와 인접해있어 영어에 대한 수요가 높은 지역이다. 수업은 소규모로 운영되며,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베이킹을 가르친다.

물론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일과 휴식의 경계는 무너졌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왜 굳이 이런 힘든 길을 가냐며 걱정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잘 버텨보리라 각오를 다졌다.
최혜린 씨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 조성옥 작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꿈 때문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그림 큐레이터를 자처하며, 디저트를 통해 엄마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제주 한경면 청수리에 자리한 제주포머스는 단순한 디저트 가게가 아니다. 그곳에서 굽는 머핀 하나에도, 삶의 이야기와 예술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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