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하고 담백한 머릿고기와 순대, 풍성한 인심에 배도 마음도 채웠다
[동네 맛집] 제주시 보성시장 내 ‘하영순대’
참새와 방앗간이란 속담이 있다. 근처를 지날 때면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장소인데,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기 있다.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를 푸짐하게 내놓는 재래시장 식당이 있는데, 난 거길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제주시 이도일동 제주칼호텔과 광양사거리 중간 지점에서 ‘보성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다. 재래시장이지만 다른 시장과는 많이 다르다. 건물 안에 어물전이나 채소가게, 식육점 같은 식재료 판매점은 없고 대부부이 음식점이다. 그것도 하나 같이 돼지 머릿고기와 순대, 순대국밥을 판다. 그러니까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은 거기서 거기다. 식재료는 모두 건물 밖이나 시장 주변에서 판다.

시장이 1972년에 개설됐다니, 50년이 넘었다. 70, 80년대에 제주시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 사이에 회자되는 얘기 중에 “젊어서 보성시장에서 막걸리 먹을 돈으로 땅을 샀으면 부자가 됐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당시 젊은이들이 보성시장에서 술을 즐겨 마셨고, 40~50년 사이에 제주도 땅값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제주자연사박물관에 좋은 전시가 있어 다녀오는 길에, 보성시장에 들렀다. 혼자 밥을 먹기 어색해서 시장 가까운 곳에 사는 L형을 불렀다. 예전에 제주시에서 서로 가까운 곳에 살 때는 보성시장에서 밥도 여러 번 같이 먹었는데, 내가 서귀포시로 이사한 다음에는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둘이 함께 이곳을 찾은 건 10여 년 만이다.
보성시장 안에 많은 음식점 가운데, L형은 ‘하영순대’를 좋아한다. 시장에서도 가장 안쪽 구석에 있는 음식점인데 구조도 길쭉해서 안에서는 이동하기도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즐겨 찾은 이유는 음식이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순대·머릿고기 세트를 주문했다. 보성시장에선 가장 흔한 메뉴다. 국물과 반찬이 딸려 나온다. 밥을 같이 먹기도 좋고 막걸리 안주로도 최고다.

주문하면 반찬이 먼저 상에 오른다. 깍두기와 오이김치, 양파지, 파김치, 마늘장아찌, 삶은 배추, 풋고추가 밑반찬으로 나오고, 간장과 된장, 소금이 양념으로 같이 오른다. 그리고 삶은 돼지 간을 얇게 썰어서 내놓았는데, 주요리가 나올 때까지 임시 안줏거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반찬과 양념만으로도 상이 가득 찼다.
그리고 순대·머릿고기 세트가 나왔다. 우선 순대는 제주식으로 돼지 대장 안에 당면과 메밀를 돼지 피를 섞어서 채웠다. 순대 한 점을 간장에 찍어서 먹었는데, 돼지 창자 씹히는 식감이 쫄깃하고 메밀과 순대가 어우러져 깔끔하고 풍성한 맛을 낸다.
그리고 머릿고기, 싱싱한 고기를 적당히 잘 삶았다. 살코기와 껍질이 담백하고 쫄깃한데 서로 조화롭다. 고기가 맛있으니, 된장에도 어울리고 간장에도 어울린다.(제주도사람들은 수육 종류를 먹을 땐 주로 간장에 먹었다.)

반찬은 모두 토종음식인데, 싱싱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마늘장아찌와 깍두기는 정말 일품이다.
허기가 몰려왔던 터라 나는 밥을 한 그릇 주문했고, L형은 참았던 막걸리를 찾았다. 밥과 막걸리와 국물이 함께 나왔다. 두 사람이라 국물은 두 뚝배기가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많은 얘기를 오래 주고받았는데, 고기 접시와 밥그릇을 다 비우지 못했다. 세트메뉴 한 접시가 2만 원, 밥 한 그릇이 1,000원, 막걸리 한 병이 3,000원인데, 주인장은 밥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주인장 인심에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웠다.
제주시 보성시장 ‘하영순대’
제주시 동광로1길 32, 064-723-1279
막창, 내장, 순대, 머릿고기, 세트 각 2만 원
순대국밥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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