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처럼 우리에게도 ‘병아리는 희망’

[북토크] 『닭큐멘터리』의 저자 효정 작가

농가주택 마당에서 좌충우돌하며 닭을 키우는 이야기가 참석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닭이 흙 목욕하는 장면이 아름답다는 대목에 반려 닭을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읽혔다. 시인 김수용이 닭을 키우며 백만장자 부럽지 않다고 했던 것처럼, 작가의 가족도 병아리를 통해 행복을 설계하고 있다.

『닭큐멘터리』의 저자 효정 작가 초청 북토크가 21일 오후, 한경면 청수리 소재 카페 ‘즈물’ 뜰에서 열렸다. 작가는 이날, 닭을 키우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가족이 겪게 된 일을 소재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청년 창업가 모임 ‘서쪽가면’이 행사를 주최했다.


▲ 『닭큐멘터리』의 저자 효정 작가(사진=장태욱)

작가의 가족은 10여 년 전 제주도에 들어와 서귀포시 대정읍 농가주택에 거주하며 마당에 닭을 키운다. 지난해에는 그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엮어 에세이『닭큐멘터리』(좋은여름)를 발간했다.

작가 가족이 이사한 시골집 마당에 닭장이 있었다. 그 단순한 상황이 가족이 닭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계기다. 닭을 키우면서 수많은 기쁨과 절망을 경험했고, 닭의 온 생애가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작가는 “토종닭을 먼저 키우고 브라만 닭을 키웠다. 브라마는 몸집이 크고 사납게 보이는데 의외로 순했다.”라며 “닭은 키우다보니 저마다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여태 키운 닭 가운데 ‘오리진’이라는 녀석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영어교육도시 인근에 ‘오리진’이라는 마트가 있는데, 거기서 사온 유정란을 닭이 품어서 부화했다. 그래서 부화한 병아리에게 ‘오리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리진이 커서 닭이 된 후, 매일 아침 큼직한 알을 보는 기쁨이 찾아왔다. 당연히 가족은 매일 빠짐없이 굵은 알을 선물하는 오리진을 사랑했고, 그 때문에 오리진은 다른 닭들의 질투와 미움을 샀다.


▲ 이날 어린이들이 쿠키 장식 체험을 하는 장면(사진=장태욱)

집에는 골칫덩어리 수탉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녀석은 새벽마다 우는데다 오리진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가족들은 이 애물단지 수탉을 가두어 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다. 그럼에도 새벽에 마당에선 닭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오리진은 암탉이 아니고 수탉이었고, 큼직한 알을 낳은 건 다른 암탉이었다.

마을 안에 살다보니 닭 우는 소리는 민폐이고 골칫거리다. 수탉은 모두 백숙이 되었고, 결국 마당에는 결국 암탉만 남았다. 한 때나마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오리진도 그런 운명이 되었다.

보통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은 부화한 지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하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훨씬 오래 살 수 있다. 작가의 집에 있는 닭 가운데는 일곱 살이 된 암탉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장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닭은 전염병에 취약하고 주변에는 수많은 포식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개와 뱀, 족제비가 다 닭을 공격하는데, 가장 위험한 건 고양이라고 했다.

작가는 “닭 얘기지만 가족 이야기다. 독자들마나 자기 이야기로 읽었고 그래서 반응이 다 달랐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수영의 시 ‘양계변명’에 나오는 ‘병아리는 희망입니다’라는 대목에 공감한다고 했다.

김수영 시인은 1950년대 중반에 마포 서강에 있는 낡은 농가주택으로 이사해 닭을 키웠다. 시인은 달걀을 팔아 생활하며 ‘지극지긋한 원고료 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병아리가 커가면서 색깔이 변하는 걸 보고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작가는 “닭은 발로 땅을 파서 몸에 뿌리는데, 이걸 흙 목욕이라고 한다.”라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 '서쪽가면'에 함께 하는 청년 창업자들(사진=장태욱)

행사를 주최한 ‘서쪽가면’은 한경면 중산간 마을에서 창업한 청년들의 모임이다. 띠키트 이화정, 바언제주 김형준, 제주포머스 최혜린, 러스티호미스 임성준, 오드사이즈페이퍼 최영서, 즈물 장윤호 등이 함께 한다.

'서쪽가면'은 청수리 반딧불이 축제를 계기로 ‘자연과 함께 하는 아동문학 나들이’ 행사를 기획했다. 중고책을 기증받아 판매한 후 수익금을 곶자왈공유화재단에 기부하고, 북토크를 열어 독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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