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고도 향긋한데, 귀한 성분까지 가득한 꽃
[주말엔 꽃] 망장포를 수놓은 인동초 꽃
초여름이 되자 해변에 인동초 꽃이 피었다. 하얀 꽃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점차 노랗게 색이 변한다. 향긋한 꽃내음과 화려한 색을 좇아 벌이 날아든다. 꽃잎 한 장이 깊이 말려 화관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리고, 그 길로 벌이 나들고 암술과 수술이 나온다. 알고 보니 영리할 뿐만 아니라 피부 건강에도 한없이 좋은 꽃이다.
15년 전 우리 가족이 도시생활을 접고 귀촌한 동네가 남원읍 하례리 망장포다. 마을의 이름이 그렇듯 마을 해안에 조그만 포구가 두 개나 있다. 오래 전 현무암 바위를 쌓아서 만든 포구도 이름이 망장포고 콘크리트 방파제로 파도를 가린 포구도 이름이 망장포다. 오래된 포구 대신에 새로운 포구를 만든 것인데, 지금은 두 포구 모두 쓰임이 없다. 어민들이 인근 다른 포구에 배를 대면서, 포구는 낚시꾼들의 차지가 됐다.

포구로서 쓰임이 다했지만 망장포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높은 언덕이 병풍처럼 포구를 감싸는데, 언덕에는 소나무와 풀꽃들이 자란다. 요즘은 인동초(忍冬草)가 피어 포구를 화사하게 장식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 꽃을 좇아 벌들이 날아든다.
인동초는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는 덩굴성 식물로, 우리나라 어디에나 잘 자란다. 겨울에도 덩굴이 시들지 않고 견뎌내기 때문에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풀의 이름으로는 추운 지역에서 겨울을 견뎌야 비장미가 넘칠 텐데, 이 포구에서 겨울에도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난다. 인동초로는 최고 좋은 팔자를 타고 난 녀석들이다.

인동초의 꽃은 처음에 흰색 방망이 모양의 화관으로 3~4센티미터까지 자란다. 화관이 충분히 자라면 5월말이나 6월 초에 그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진다.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인데, 이 무렵 꽃의 색은 노랗게 변한다. 색이 변하는 것은 수분을 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사람의 손가락이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네 개 손가락과 분리되듯이, 인동초의 꽃 끝도 네 개는 붙어있고 한 개는 나머지 것들과 분리된다. 암술과 수술을 내고 벌이 들어오는 통로를 만들려면 꽃 끝 한 갈래를 뒤로 말아야 한다.

수술은 다섯 개이고, 암술은 한 개인데, 모두 콩나물처럼 길쭉하다. 암술은 비교적 곧바른데, 수술은 휘어졌다. 인동초를 ‘노옹수(老翁須, 늙은 할아버지의 수염)’라고도 부르는데,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과 닮았다는 의미이다.
암술머리는 노란색인데, 수술의 꽃밥은 갈색이다. 외관상으로 암술머리와 수술의 꽃밥은 서로 부딪칠 만한 키인데, 자가수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수술이 먼저 성숙해 꽃가루를 방출한 이후에 암술이 성숙한다. 이 성숙한 암술은 다른 꽃이 내는 화분으로 꽃가루받이를 하게 된다.

인동초는 과거 한방에서 관절염, 피부 가려움증, 종기, 전염성 간염 등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런 효능을 증명할 만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
제주대학교 생명과학기술혁신센터 전아림 교수 등이 2016년에 수행한 실험에 따르면, 인동초 꽃에 함유된 에센셜 오일에는 항산화 및 항염 효능이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 연구팀은 별도봉과 사라봉 일대에서 자생하는 인동초 꽃을 6월 상반기에 채취한 후 에테르와 에탄올을 이용해 농축 상태의 오일을 얻었다.
그 오일의 성분을 확인하고 성분의 항균활성, 항염활성 능력을 시험했다. 그 결과 인동초 꽃 추출 오일에 황균활성과 항염 활동이 다른 비교 식물보다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인동초 꽃을 원료로 화장품을 만들면 피부에 세균에 감염되는 빈도도 줄어들고 염증도 줄어들 것이라는 결과다.
그런 기특한 식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조물주가 주변에 이런 식물을 보급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상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활용했으니, 그런 지혜를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
화사한 인동초 꽃이 초여름 오래된 포구 주변을 수놓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