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과 상원(영실) 사이 중원은 화전마을이었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62) 하원동 화전

과거 서귀포시 하원동 상잣 위에 너른도화전이 있었다. 법정사항일운동 발상지로 가는 길가 하천변에 있었는데, 하원동 1848일원을 이른다. 주민들은 영실 주변을 상원, 이 지역을 중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원동은 중산간 마을로 법화사와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하원동에서 목장이나 산으로 오르려면 제주4·3 당시 사라진 고지세 마을에서 왕자의묘 서쪽 → 원만사 동쪽 목장입구 → 목장 → 하원수로를 따라 영실로 올라가는 길과 하원마을 → 법화사정도(하잣) → 한굴왓정도 → 보섭코지(상잣) → 너른도 → 서리선목(월평목장) → 벨레기펭밧 → 볼레오름 서쪽 ‘하리대벵듸’까지 가는 길이 있다.


▲ 옛 너른도화전에 대나무가 있어 예전에 사람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다.(사진=한상봉)

너른도 화전은 목축을 하는 하원동 테우리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어, 주변 사람들이 화전에서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너른도화전도 목장지 안에 있었기에 예로부터 목축을 하며 만들어진 마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목축이 활발했던 하원동은 볼레오름 주변이나 구영실을 지나 윗세오름이 있는 ‘세오름밧’(선작지라 잘못 알려진 평지)에 우마를 많이 올렸는데, 화전민들은 이 우마들이 마을 경작지를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사 의열사 조금 위에 목장담을 조성하고, 조금 더 위에는 ‘상올잣담’(830m 고지선상)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너른도화전은 거린사슴오름 인근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국림담의 위·아래에 산발적으로 분포한다. 당시 화전민들은 법정항일교 하천의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이 하천은 멀리 ‘세오름밧’과 영실계곡에서 흘러든 물줄기가 존자암 주변을 흘러 850m고지에서 만나 아래로 돗(도)도리오름(법정악으로 잘못 불리는 오름) 곁을 지나 너른도 화전터에 이른 후 하원목장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도순동 ‘큰내’, 강정동 강정천에 이른다. 현재, 포털사이트 지형도에는 ‘하원천’를 도순천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도순천은 도순동 ‘큰내’ 지역만을 이른다.


▲ 너른도에 남아 있는 그릇 조각(사진=한상봉)

하원동 마을지에 너른도화전과 관련해 ‘하원동 호적중초에 화전인 50인이 있다’라 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총독부가 1914년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한 문서에도 너른도 화전에 사람이 살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국가기록원에 기록이 남아 있다.

1914년 당시 지번별 거주자는 다음과 같다.

1843~1850번지에 조형화, 김응추, 임성률, 임항률, 박재후가 집과 밭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쪽 1852~1855번지에 허수석, 강병규, 강춘신, 강○백이 살았다. 1856에 허○○, 1859엔 박재돌이 집과 밭을 소유해 살았고, 1963~1866엔 이춘삼, 김현옥, 안신환이 살고 있었다. 이외 지금은 서귀포 휴양림에 포함된 1867과 1868번지엔 강재구, 강춘백이 살고 있었다.

이중 이춘삼은 여러 필지의 밭을 소유하고 있어 부자로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1862번지 이춘삼의 밭 옆엔 나는물(生水)이 있어 이 물도 하천 물과 더불어 식수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법정항일교(사진=한상봉)

1914년 토지조사 사업 당시 하원동의 대지(호구) 수는 222가구로 그중 16가구가 너른도 인근에 대지를 소유했다. 너른도에 토지를 소유자 사람이 화전민이었을 거라 추정한다면 조선시대 말기에 이 마을주민 전체 7.2%가 화전지인 너른도를 중심으로 위·아래에 흩어져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에는 대포동 산 6-1번지 길가변의 두 집터를 포함해 9가구로 줄어들고 있음이 보이고 있다. 현재 이들 화전지에서 또렷이 확인되는 집터는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길을 내거나 월평마을공동목장, 하원마을공동목장을 조성하며 훼철시켜버렸기 때문이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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