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오름이던 물영아리, 숲이 빠르게 확산해 한라산 숲과 연결된다

‘물을 품은 오름의 가치 발굴 및 활용 심포지엄’ 24일 열려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알려졌다. 예전 제주도사람들은 오름에서 소와 말을 키우거나 사냥을 했다. 농지가 부족하자 오름 주변에 밭을 일궈 농사를 짓기도 했고 나무를 태워 숱을 굽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오름에 봉수를 설치해서 봉화를 피웠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제주도 오름에 진지동굴을 만들어 전쟁을 준비하기도 했다. 제주 4·3 때는 수많은 사람이 군경의 토벌을 피해 오름으로 몸을 숨겼다.

오름은 제주도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오름에 의지해 살았고, 오름에 숨어 울었다으며 죽어서 오름 가까운 곳에 묻혔다.

오름은 외형상 다양한 얼굴을 띠고 있다. 이에 오름을 형태에 따라 말굽형, 원추형, 원형, 복합형 등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오름을 안다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게 분류했고, 그게 패턴이 됐다. 그런데 이런 구분은 학자들이 편의상 정한 것일 뿐, 오름을 생활의 터전으로 삶았던 제주도사람들에겐 별 의미 없는 구분이다.

오름의 가치를 주민의 입장에서 새롭게 정립해보려는 논의의 장이 열렸다. 많은 오름 가운데 분화구나 그 주변에 물이 있는 12개의 오름을 선정하고 그 가치를 조명해보자는 취지다.


▲ 물을 품은 오름 가치 확산을 위한 심포지엄이 24일 열렸다.(사진=장태욱)

‘물을 품은 오름의 가치발굴 및 활용 심포지엄’이 24일 오후 3시, 한라생태숲 탐방객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가 제주도 12개 오름을 조사한 결과를 공유하고 그 활용방안을 찾아보고자 마련한 행사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후원했다.

앞서 연구자들(김찬수, 유철인, 송관필, 김미경 등)은 물을 품은 오름 가운데 12개 오름을 선정·조사했다. ‘산정호수를 품은 오름’ 3곳(금오름, 세미소오름, 영아리오름, 물영아리오름 등), ‘샘을 품은 오름’ 5곳(각시바위, 정물오름, 돌미오름, 웃바메기오름, 널개오름오름 등), ‘기저호수를 품은 오름’ 3곳(족은대비악, 가마오름, 여문영아리 등)인데, 이것들이 이번 심포지엄의 논의 대상이다.

유철인 제주대 명예교수와 송관필 박사가 각각 주제발표를 맡았다. 그리고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전 소장, 이석창 서귀포문화사업회 회장, 허남춘 제주대 명예교수, 임재영 제주자연문화유산연구회 회장,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 원장, 류길춘 한국지질환경연구소 소장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 유철인 교수의 주제발표

유철인 교수는 ‘물을 품은 오름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제주도 오름의 효용은 크게 목축과 식수 제공처, 묘지 등으로 구분했다. 대표적인 목축 장소로는 물영아리와 금오름, 돌미오름을 소개했는데, 그 흔적으로 물영아리의 잣성, 금오름의 생이못과 금악담, 돌미오름의 급수시설을 확인했다.

식수 제공처로는 정물오름과 각시바위오름, 웃바메기오름, 영아리오름 등을 소개했다. 정물오름의 정물과 각시바위오름의 절곡지, 웃바메기오름의 선세미, 영아리오름의 행기소는 대표적인 식수원이었다. 특히, 각시바위오름의 절곡지는 서호리 상수도의 시초를 알리는 곳이었고, 광평리의 행기소는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아 인근 산간 주민의 생명수였다.

송관필 박사는 ‘물을 품은 오름의 식생과 식물’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1960년대 이후 시대별 항공사진을 비교하며 12개 오름의 변화상을 확인했다.


▲ 송관필 박사(사진=장태욱)

송 박사는 “1960년대 이후 오름에 조림이 시작됐는데, 삼나무, 편백, 상수리나무가 주를 이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목장에 소들이 있어서 조림 초창기에는 나무가 잘 자라지 못했는데 오름 북사면에는 조림수 외에도 보리수, 누리장나무 같은 자연림이 발달하며 그 주변으로 퍼졌고, 습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나무도 자랄 수 있게 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물영아리오름 주변에는 목장이었고, 오름에 숲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름과 목장에 숲이 형성됐는데, 머지않아 한라산 주변 숲과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송 박사는 “샘을 품은 오름에는 대체로 샘이 크지 않지만 식물상에는 크게 영향을 준다.”라며 “1918년 지형도에는 좌보미오름과 궁대악, 낭끼오름, 모구리오름 등에도 사면에 물이 있었다고 표기됐다.”라고 말했다.


▲ 송관필 박사의 주제발표에 담긴 물영아리 산정호수

기저호수를 품은 오름과 관련해서는 “주변 초지에 골풀이나 고마리 등 습지 식물이 관찰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인위적으로 수원을 조성한 지역도 있고, 숨은물벵듸처럼 오름과 오름 사이 평지에 습지가 발달한 곳도 있다.”라고 말했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지질환경연구소 류춘길 대표는 “오름은 문화적으로 중요한데, 땅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지질자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주도 과거의 환경 기록을 오름이 가지고 있다. 특히, 습지에 고기후 기록을 간직하고 있어서 물을 품은 오름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토론회(사진=장태욱)

류 대표는 “물을 품은 오름이 람사르습지로서 현재 가치가 중요한데, 그 못지않게 과거의 환경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자원이다.”라고 말했다.

허남춘 교수는 “19~20세기 물이 풍부한 오름 주변에 논농사가 이뤄졌는데, 그 현황이 궁금하다.”라고 질문을 던진 뒤 “물오름을 논궤오름이라고 하는데, 논농사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라며 의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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