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만 했던 삼촌들, 늦게 입문한 그림 파는 재미 쏠쏠

[특별전시] 선흘 삼춘들 ‘밭의 신들, 그림에 스며들다’

2025 푸파페 제주 특별전시 ‘밭의 신들, 그림에 스며들다’가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렸다. 제7회 농촌융복합산업 제주국제박람회 ‘푸파페 제주’에 맞춰 열린 특별한 전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전업 화가나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 선흘1리 ‘여자 삼춘’들이다. 젊어서 선흘로 시집을 와서 아이 낳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삼춘들인데, 뒤늦게 배운 그림에 흠뻑 스며들었다. 밭일이 가장 익숙한 삼춘들인 만큼, 유채와 당근, 귤, 수박 등 농사에 관한 그림이 대부분이다. 농투성이로 보낸 인생을 담아낸 그림을 박람회장 가운데에 펼쳐놓은 시도로 인해 올해 박람회가 유달리 돋보였다.


▲ 특별전시장에서 삼춘들의 그림을 감상하는 시민들(사진=장태욱)

12일 특별전시가 열리는 행사장을 찾았다. 박람회장을 찾은 시민들은 삼춘들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어르신들의 인생에도 관심을 보였다. 삼춘들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렸는지 설명하는데, 그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다.

삼춘들을 그림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사단법인 소셜뮤지엄' 최소연 이사장이다. 최 이사장이 선흘로 이주하면서 최 이사장-그림-할망들로 이어지는 삼각 인연이 시작됐다.

최 이사장은 2028년 선흘에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마을에서 삼춘들이 가진 창고와 그 안에 농기구에 반했고, 그걸 빌려서 학생들과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로 썼다. 그 과정에서 삼춘들이 그림에 관심을 품게 됐고, 몰래 그림을 그려서 최 이사장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최 이사장과 삼춘들은 그림에 대해 얘기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결국은 같이 모여 그림을 그려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삼춘들은 그림을 모아서 책도 한 권 냈고, 해마다 새로운 그림을 그려서 전시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삼춘 화가는 12명이다. 삼춘들은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모든 걸 자발적으로 한다.


▲ 김인자 삼춘(사진=장태욱)

최소연 이사장은 “선흘그림작업장에는 할머니들 각자가 자기의 연구실이 있어서, 거기서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삼춘들이 농부에서 화가가 되셨기 때문에 자생력이 있다. 당당하게 자신의 그림을 팔고 그걸로 물감도 사고 그림판도 산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삼춘이 있었다. ‘고목낭 할망’으로 불리는 김인자(87) 삼춘인데, 방금 전에 그림 한 점이 50만 원에 팔렸다고 말했다. 삼촌은 그림을 판 돈으로 다른 할망들에게 한 턱 내고 물감과 종이도 살 것이라고 했다.

김인자 삼춘은 얼마 전까지 귤도 재배하고 밭작물도 재배했는데, 농사는 모두 자녀들에게 모두 넘겼다. 그림에는 귤나무, 당근처럼 삼촌에게 익숙한 작물이 들어 있다. 그림에 ‘썩은 낭에서 버섯이 나완, 하늘이 땅에 내려올 수가 어신데 어떵 와신고?’라는 글귀가 적혔다. 나무에서 버섯이 나오는 걸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삼춘은 “글도 그림도 몰랐는데, 일을 그만두고 배웠다.”라고 말했다.


▲ 김희선 삼춘은 고향 신촌리에서 물질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삼춘은 그림을 통해 젊은 시절의 기억을 소환했다.(사진=장태욱) 

강희선(89) 삼춘은 3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천읍 신촌리가 고향인데 젊어서 선흘로 시집을 왔다. 처녀 때 신촌 바다에서 해녀로 물질을 했는데, 결혼한 후에는 물질을 하지 않고 밭일만 했다. 농촌 노인이 공통적으로 앓는 증상인데, 허리가 아파서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

강희선 삼춘은 다른 삼춘들과 달리 소라와 전복, 성개, 문어 등 해산물도 그리고, 테왁처럼 물질 도구도 그렸다. 물질을 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을 그림으로 소환해냈다.

김옥순(80) 삼춘은 평생 일을 하면서 살아서 그림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농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우영팥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정도만 일을 한다. 농사를 많이 할 때는 그림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 김옥순 삼춘이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사진=장태욱 )

김옥순 삼춘은 “그림이 뭔지도 몰랐는데, 동네 할망들이 모여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나도 그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엔 그림에 서툴러 농기구만 그렸는데, 그러다보니 ‘우영팥 할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여기 그림들은 내가 우영팥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옥순 삼춘은 자신의 그림 가운데 봄을 주제로 그린 것을 가장 먼저 소개했다. 봄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2월 매화, 3월 유채꽃, 4월 귤꽃 등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꽃에 꿀이 들어있어서 벌이 모이는 걸 표현하고자 했다며 자신의 그림을 상세히 설명했다.


▲ 김옥순 삼춘이 기자에게 자랑했던 그림인데, 100만 원에 팔렸다.(사진=장태욱)

이날 박람회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려는데, 김옥순 삼춘이 기자를 불러 세우며 그림을 팔았다고 자랑했다. 30분 전에 봄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던 작품을 100만 원에 팔았다는 것. 삼촌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최 이사장이 말했던 자생력, 그건 삼춘들의 인생을 향한 시민의 응원과 지지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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