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두루 공부했던 청년인데 도대체 동자석이 뭐길래
[서쪽가면] ② 잊혀가는 동자석에 생명을, ‘즈물(ZMUL)’의 대표 장윤호
제주도의 서쪽 끝, 한경면에선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그 중심엔 한경면에서 활동 중인 청년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로컬 네트워크 ‘서쪽가면이 있다. ‘서쪽가면’은 이름 그대로 제주 서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자 만들어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업자들이 힘을 모아 가려진 한경면의 매력을 알리고,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연재는 ‘서쪽가면’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삶과 철학을 들여다보는 기획이다. -필자주 |

제주 서쪽 끝, 한경면 청수리. 이곳에 제주의 전통 석상 ‘동자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리려는 스물일곱 살 청년이 있다. 바로 ‘즈물(ZMUL)’의 대표 장윤호 씨다.
과거 동자석은 무덤 주변에 세워져 죽은 이를 지키는 동반자로 여겨졌다. 수호와 안식의 상징이자, 가족의 화합과 건강, 풍요, 행복을 기원하는 제주인의 마음이 담긴 석상이었다. 두 손에 소중한 무언가를 안고 있는 형상은 제주 고유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동자석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장윤호 대표는 그 전통에 다시 숨을 불어넣기 위해 스스로 창구가 되기로 했다.
장 대표는 대도시에서 자랐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과 도쿄, 상하이를 오가며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요리를 배우고, 중국에서는 대학 과정을 마쳤으며, 귀국 후에는 친구들과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업이 보류되면서 삶의 방향을 다시 고민했고, 그 시기 제주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했다.
그의 아버지 장규석 씨는 오랜 세월 동자석을 다뤄온 장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작업실 옆에서 자란 장 대표는,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제주에서 변화 없는 기념품 가게 진열장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매년 제주를 방문해도 상품은 늘 같았고, 외형만 ‘제주스러운’ 캐릭터들 사이에서 진짜 제주의 감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은퇴와 함께 자취를 감춰가던 동자석을 콘텐츠로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24년 8월, 아버지의 작업실을 리모델링해 ‘즈물’이라는 이름의 카페형 브랜드 공간을 열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그에게 즈물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이야기를 전하고 감성을 나누는 공간이다. 캐릭터 상품은 물론, 동자석을 형상화한 디저트까지 직접 개발하며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접근성 높은 관광지와 거리가 있는 청수리에 위치한 것도 의도된 선택이다. 시내 한복판이었다면 “왜 하필 동자석인가?”라는 질문부터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공간 자체가 스토리를 품고 있고,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초기에는 마케팅, 제작 단가, 소비자 반응 등 예상치 못한 현실적인 장벽도 있었다. '공간만 잘 꾸며놓으면 사람들이 오겠지'라는 기대는 곧 깨졌다. 특히 캐릭터 산업의 높은 진입 장벽과 경쟁 속에서 의미를 담은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선 전략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체감했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모님 역시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지금은 “너라면 잘할 것 같다.”라며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장 대표는 즈물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브랜드로 키워가고자 한다. 디저트는 제주를 대표하는 기념 디저트로, 캐릭터는 더 많은 유통 채널과 굿즈를 통해 ‘제주에 오면 누구나 아는 콘텐츠’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한경면 청수리에 자리한 ‘즈물’은 사라져가던 동자석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장윤호 대표는 잊혀지던 동자석을 일상의 콘텐츠로 되살리며, 제주 고유의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는 중이다. 동자석이 과거의 유물로만 남지 않길 바라는 그의 진심은 ‘즈물’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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