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88세의 일기로 선종했다고 바티칸이 밝혔다. 영국 언론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도의 수장인 교황은 21일, 산타 마르타의 자택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 교황의 시신은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일본 교토, 일본인들에겐 천년 수도인데, 시인 정지용과 윤동주를 길러낸 도시다. 도시에 배긴 오래된 흔적을 더듬는 일는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그 오랜 염원이 딸을 통해 이뤄졌다.3월 중순에 딸이 회사에서 안식월을 받았다. 워낙에 여행을 좋아하는 아이라, 한 달
도순동 1354번지 서쪽 냇골에 물이 있었는데, 가뭄이 심하면 화전민들은 동쪽 왕하리내(궁상천 상류)에서 물을 구했다. 서쪽 내 골짜기 곁 집터 사이에는 지금도 돌방아 아랫돌이 남아 있다. 주변 문 씨, 윤 씨, 나 씨 집안이 돌방아를 함께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
한국농촌지도자서귀포시남원읍분회가 21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회원들은 가난했던 농촌을 풍요로운 땅으로 변모시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고령화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자는 데에 뜻을 보았다.에서귀포시 농수축경제국 유지호 국장, 도의회 오승식 교
이승에서 못다 이룬 인연끝내 서러워쇠소깍에 몸을 던진선남선녀의 눈물검은 해수욕장안개에 갇히고밤새 파도소리에잠 못 이룬 등대누가 쌓았나?빈 모래밭에 돌탑직립의 무게아슬아슬한 시간PHOTO BY 양희라
우리나라에 좋은 제도가 많은데 국민건강보험을 특별히 신뢰한다. 그런데 보험료가 예상 밖으로 많이 부과되는 속상한 일을 겪었다. 건강보험 지사를 방문해 자초지정을 묻고 확인하고 나오는데, 연한 보랏빛 꽃이 무더기로 휘날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서운한 마음, 그런 건 바람
나뭇잎과 묵은 가지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물영아리오름은 지난 회 이야기처럼 람사르습지 사이트다. 만들어진 과정이 독특하고 주변 경관 또한 수려하다. 오르고 내리는 탐방로가 아름다운 숲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한테 인증되었다.▲ 물영아리 근처 목장에 자생하는 비목나무(사진
오래된 질문, 오래된 재회4월 16일 저녁 7시 서귀포시민 문화체육복합센터에서 진행된 가 다섯 번의 강의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강의에서는 존재와 하나에 대한 화두를 시작으로 수학에서 ‘1’의 존재에서부터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정리하고 ‘인공지능’으로 마무리했
도순동 동케 600 ∼ 610m 고지 능선을 따라 국림담이 있는데, 그 주변에 또 다른 화전촌이 있었다. 왕하리화전이다. 왕하리화전은 법정사무장항일운동 발상지와 영남동 ‘서치모르’ 중간에 있었으며, 국림담 아래위로 그 터가 남아있다. 이 화전지의 동쪽 궁상천의 상류 지
무릉리 녹남봉야트막한 오름인데진지동굴과 상처상처도 많았다.오름 앞에서풀어진 길을 따라작은 숲 터널에서이름 내려놓는 통과의례벤치에 자리내준오름 꼭대기에서너른 대정 들녘그 풍경에 잠겼다.PHOTO BY 양희라
농가의 기대와 달리 올해 제주산 노지감귤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지난해 열과 등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탓에, 나무의 수세가 좋아 착과량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봄에 꽃눈이 나오는 양상은 농가의 예상과는 다소
집 뜰인데, 작은 무덤이 있다. 그런데 동백꽃과 유채꽃이 그 작은 무덤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무덤에서 움이 난 고사사리가 봄 햇살을 받고 솟아올랐다. 10일에 하례2리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골목에서 어느 집 마당 입구에서 무덤 한 기를 봤
서귀포 남주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11일 서귀포 천지연폭로포 현장학습을 나갔다. 지역을 이해하고 추억도 쌓는 자리다. 그런데 인솔한 교사들은 천지연폭포 현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랜 가뭄으로 낙수의 양의 줄어들고, 폭포 연못은 흉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시원한
부분 기호[§]가 쏘아 올린 작은 공4월 9일 저녁 7시 서귀포시민 문화체육복합센터에서 네 번째 강의를 들었다. 이날 주제는 ‘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 순수 개념 논란’이다.이번 강의에서는 판단의 범주에 대해서 배웠고 논리학 원론으로부터 칸트의 논리학으로 이어지는 강의
1914년 4월 지적원도에는 도순동에 200호의 집이 있었다. 이 중 구머흘과 왕하리 화전은 도순동 전체 6.5%에 해당하는 13세대가 살았다. 화전은 고지천이라 잘못 알려진 ‘법정이내’를 중심으로 도순목장 ‘동케’와 ‘서케’ 국림담의 위와 아래에 있었다.구머흘은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