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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 2025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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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기자의 전체기사

굶주린 시대, 화전민과 숲지기 곤장 쳐도 제주도숲 못 지켜

조선후기에 기후위기가 반복되면서 기근은 일상화됐고,  화전의 확대는 숲의 파괴로 이어졌다. 김영우의 『조선 숲은 왜 사라졌는가 : 2022』에는 숲의 파괴 과정을 담은 내용이 있다.  1500년대 임진왜란 후에는 도성 중심으로 산림이 훼손되었는데, 이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1-12 23:21

반복되는 기근에 굶주린 백성, 출륙 막으니 갈 곳은 화전뿐

생물도를 포함해 제주도화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들어가 살았을까?제주에 화전이 등장하는 기록은 『세종실록』에 고득종(高得宗)이 하잣 축성 건의와 관련한 기사에 나타난다. 1430년 2월에 하잣이 완성되며 목장 안 344호를 옮겼다는 내용이다. 4년 뒤『세종실록』에는 제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한상봉 2024-11-05 21:49

생물도화전은 화전사 연구의 나침반, 이름부터 틀려서야

서홍동 생물도 화전은 산록도로 북쪽 서홍동 2559~2564번지 일원에 살았던 화전 지역이다. 일제총독부가 제작한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중 제주지형도에 생물도(生水洞)가 보인다. 솔오름에 인접한 서북쪽 기슭에 동홍동 연자동이 있고, 그 서쪽 서홍동에 생물도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30 09:42

오가작통 피해 화전 택했는데, 자손은 지방 거두로 부상

성종 16년(1485)에 반포된≪經國大典≫에는 오가작통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조문이 실렸다.‘서울과 지방 모두에 5가를 1통으로 하고 통에는 통주(統主)를 둔다. 그리고 지방에는 5통마다 리정(里正)을, 면(面)마다 권농관(勸農官)을 두고, 서울에는 1방(坊)마다 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17 00:38

화전민 떠나고 무장대 은신처, 마침내 불러들인 주둔소와 골프장

일제강점기에 서귀포시 상효동 선돌 일원에 화전민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이들은 선덕사 동쪽 인근 언물내의 물에 기대어 생활했다. 그 밖에도 화전은 선돌선원 북쪽과 서쪽에도 분포했다.■사두석화전 사두석은 남국선원의 동쪽 상효동 산 41번지에서 아래쪽 산 69-1번지 산록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10-11 09:05

깊은 산속에 이끼 낀 돌방아, 누가 왜 만들었나?

조선총독부가 1914년 토지조사를 완료하고 작성한 지적원부에는 상효리 선돌 일원에 화전 지번이 확인된다. 일제강점기에 선돌 일원에 화전민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이들은 선덕사 동쪽 인근 언물내의 물에 기대어 생활했다. 그 밖에도 화전은 선돌선원 북쪽에도 드넓게 분포했다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27 09:15

맑은 샘물로 벼농사 짓겠다는 화전민의 꿈, 실패한 이유

조선총독부가 1914년 토지조사를 완료하고 작성한 지적원부에는 상효리 선돌 일원엔 세 군데 화전 지번이 확인된다. 상효리 1591-1593번지다. 상효동 1593번지는 선돌 앞 황솔나무가 있는 곳인데, 황솔나무 인근에 화전 가옥이 있었다고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다.▲ 선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11 01:15

법정사항일운동 선봉장, 선돌화전에 몸을 숨겼다

상효동 화전민은 산록남로 위쪽에 있던 상잣 위 ‘중원이케’와 숲 지역에 거주했었다. 『(제주동부)지역잣성유적보고서』에 따르면, 상잣은 상효동 1467∼1465번지 상효원과 골프장 경계-신효공동묘지-남록남로 도로 남측을 접하며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에는 내가 여러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9-03 23:41

갑오개혁 때 국마목장 폐지, 화전 영역 커졌지만 모두 떠났다

앞선 기사에서 하례리 벵듸왓화전에 살았던 김 씨와 조 씨 일가에 대해 언급했다. 이들은 두 집안은 모두 대정읍에 살다가 먼 곳으로 이주해 화전민이 됐다. 조 씨 일가인 경우 가족이 천주교이이었는데 이재수의 난(1901년)을 겪은 뒤 보복을 피해 벵듸왓으로 이주한 것으로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8-29 07:33

‘이재수의 난’ 때 벵듸왓으로 들어와 화전 일군 대정사람들

남원읍 하례리의 대표적 화전마을은 제1횡단도로 수악산 인근에 있던 벵듸왓화전이다. 1914년 지적원도에는 벵듸왓화전에 가옥 10채가 표시됐는데, 1918년 제작된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제주지형도에는 14채가 나온다. 4년 사이에 4채가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화전은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8-22 08:18

물도 있고 땅도 판판 벵디왓화전, 주민 40명 다 어디로 갔나?

남원읍 하례리의 대표적 화전마을은 벵듸왓이었다. 벵듸왓화전은 제1횡단도로 수악산(지역에서 부르는 지명으로, 오름 북서쪽에 산물이 나기 때문에 수악산이라 불린다.) 인근에 있던 마을이다. 하례리 산 21번지, 산 31번지를 중심으로 마을 동쪽에는 수악산 자락이 남쪽으로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8-15 15:33

화전마을에선 올레길이 ‘속구린질’, 가가호호 촘촘한 연결망

신례리 이생이오름(이승악) 화전에 고 씨와 김 씨, 박 씨 집안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농사보다는 목축과 숯 굽기에 주력했고, 그렇게 부를 일군 후 신례리 주민들과 혼례관계를 맺었다. 김구하와 동생 김구택의 집터 사이에는 번지가 부여되지 않은 박 씨 화전 집터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한상봉 2024-08-07 19:36

화전 총각 장가드는 날, 신례리가 시끌벅쩍했다

앞선 기사에서 신례리 이생이오름(이승악) 화전에 고 씨와 김 씨, 박 씨 집안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했다. 이들을 농사보다는 목축과 숯굽기에 주력했고, 그 결과 적잖이 부를 일구기도 했다. 김구택의 경우, 당시 신·하례리에서 가장 토질이 좋다는 예촌가름(지금의 하례초등학교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한상봉 2024-08-01 17:17

예촌가름 제1토지 사들인 화전민, 이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이생이오름(이승악) 뒤 신례리 2172번지에 있던 화전엔 고○○, 2171번지엔 김구하가 살았다. 인근 위미리 4590번지엔 김구택이 살다가 이후 100m 북동쪽 지점으로 이주했으며, 위미리 4589번지엔 김구하의 아들 김좌익이 살았다. 김구택의 집터에서 북서쪽 45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7-17 20:50

일본인 운영 표고장 주변 화전민들, 농사도 짓지 않았을까?

일본인 마수다이치지(桝田一二)가 쓴 『제주도의 지리학적 연구』에 신례리 화전과 관련한 내용이 보인다. 그는 ‘남원 수악동은 신례리를 모촌(母村)으로 하여 김 씨 및 정 씨 등에 의해, 묵지동은 한남리 이 씨, 고 씨 일족에 의하여 각각 새로운 취락의 발전생성을 보게 되

공간·공동체 한상봉 2024-07-1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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