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오사카로 이주했고, 70년대 개발광풍에 화전 빼앗겼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61) 도순동 화전민(5)

<양 유서 화전에서 계속>
도순동 산록도로 북쪽 ‘편안널’이란 지역 중 산 77-5번지에는 양 유서 화전이 있었다. 양 유서는 유학자를 이르는 유서(儒書)에서 온 이름이다. 양 유서 화전터에는 숲이 조성되기 전 세 채의 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양 유서 화전에 살았던 사람의 가계는 양기○ → 부친 양○수 → 조부 양석해로 이어진다. 할아버지 양해석은 2남 2녀를 낳았는데 큰아들은 한림으로, 작은아들은 도순동 목장 화전지로 이주했다. 딸들은 일본과 제주시에서 살았다.


▲ 오사카 코리아타운. 일제강점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진출한 제주인들이 많았다. 지금도 오사카에는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제주인들이 다수 거주한다.(사진=장태욱)

도순동 양기○, 양은○ 형제에 따르면 조부 양석해는 일제시기 이전 한림읍 수원리 또는 명월리에서 도순동 목장화전으로 이주했다. 부친이 얘기하길 할아버지는 정시(지관)와 훈장을 지냈다는 것이다. 부친은 화전에서 일본으로 돈 벌러 갔는데 오사카에 머물며 철강공장에 다녔다고 한다. 양기○는 일본에서 1939년 태어나 2살 때인 1941년 한국으로 들어 왔다.

화전민들이 일본으로 돈 벌러 갔다는 증언에서 화전민들이 어떻게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양○수는 어머니의 고향 도순리에 정착하게 됐다. 양석해는 도순동 목장에 그대로 거주하다 제주4·3 때 도순리로 이주했다.

양 씨 집안은 ‘편안널’ 목장지에 1만6천여 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1970년대 목장지 개발명령이 떨어지자 목장 땅을 팔아야 할 처지가 됐다. 1969년 공표된 ‘초지법’은 목장지에 땅을 소유한 개인은 목장을 운영하든가 아니면 자본가 기업에게 땅을 팔든가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때문에 목장운영 자금과 역량이 부족한 개인들의 땅은 자금력을 갖춘 기업에 팔려나갔다. 이 일로 목장의 기업화가 시작 됐다. 그리고 1970년대 제주도에 관광 붐이 일고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목장은 외지 자본가와 기업들 손에 서서히 넘어가게 됐다. 1973년 제동목장이 이 시기에 태동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양 씨 화전민은 목장에서 메밀. 피 등을 재배했다. 조부가 살았던 주변으론 산전 돌담을 볼 수 있으며 물은 집터 양옆의 작은 하천을 이용했다.


▲ 도순천. 화전민들은 주변 하천에서 식수를 구했다.(사진=장태욱)

한편, 양 유서 회전에서 7시와 8시 사이 방향으로 425m 거리 도순동 산 82번지 북쪽 경계지점, 산록도로 북쪽 170m 거리 ‘편안널’ 지역엔 1960년대 목장지에 살며 목축을 위해 돌집을 지어 살았던 사람의 집터가 남아있다. 지금도 당시 쓰던 그릇과 돗통시 추정지, 대나무와 더불어 돌 틈에 흙질 흔적이 남아 있다.(33°17'33.32"N, 126°28'19.04"E)

이 집터는 하원동 강 씨 하르방이 살았다. ‘존굴집’ 하르방은 목축하러 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구술자 오○창에 따르면, 주민들이 상산(上山)에 쉐를 놓으면, 존굴집 하르방이 돌봐주곤 했다. 보리철 전에는 ‘편안널’로, ‘부중’(보리철이 끝난 시기)에는 법정이 지역으로 올렸다가 한 여름이면 백록담에 쉐를 놓았다. 백록담에선 두 달을 놓았는데 다른 곳은 바람이 쳐도 백록담 안은 바람이 심하지 않았으며 풀과 물이 좋았다고 한다. 토평, 법호촌, 광령리 쉐들도 들어와 모였다가 가을이 가까워오면 자기 길을 알아 되돌아갔다 한다.

그밖에도 ‘선도체비밭’ 남쪽 자락에 화전이 있었다. 법정이내 동쪽 190m 거리, 570m 고지 동케목장 서북쪽 풀밭 끝자락으로 목장지에 붙여 산전과 대나무 등이 보인다( 33°18'0.16"N,126°28'45.90"E). 이곳엔 누가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14년 지적원도에 집과 토지 소유에 대한 등기가 없어 일제강점기 이전 어디론가 이주한 것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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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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