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연지 넓은 연못에 활짝 핀 꽃, 바람과 새를 부른다

[주말엔 꽃] 법화사 구품연지 연꽃

서귀포시 하원동 법화사 연못에 활짝 핀 연꽃이 불을 밝힌다. 진흙 속에서 무더위를 뚫고 환하게 피어난 꽃 때문인지, 주변에 바람이 불고 새가 찾아온다. 연못에 의지해 잠시 더위를 피할 때면, 불자가 아닌 방문객도 잠시 극락왕생을 체험한다.



▲ 연못에 연꽃이 피고 왜가리가 찾아와 쉬었다 간다.(사진=장태욱)

하원동 법화사는 원당사, 수정사와 함께 고려시대에는 제주도 3대 사찰에 속할 만큼 큰 사찰이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멸실됐다가 20세기 초에 잠시 복원됐는데, 제주4·3 때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1980년대 이후 발굴 작업과 복원공사가 진행됐다.

당시 발굴조사에서 13, 14세기 몽골 왕궁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기와가 출토됐다. 법화사를 중수할 때 사용한 것들인데, 몽골인들은 이 사찰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리했음을 알려준다. 구품연지(九品蓮池)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뒤쪽 수원에서 솟아낸 샘이 낮은 곳으로 모여 연못을 이루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 대웅전, 구화루, 일주문 등이 복원됐는데, 여기에 들어선 연못이 특별하다. 3천 평이 넘는 넓은 면적에 연꽃과 수련이 가득한 구품연지, 불자가 아닌 사람도 이 연못에선 극락왕생을 상상할 만하다.

불경에 설명하기론 극락에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고, 사람이 극락왕생할 때는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공덕의 등급이 아홉 등급인 만큼 태어날 연꽃자리도 아홉 등급이라는 것.


▲ 법화사 구품연지(사진=장태욱)

법화사 구품연지는 규모도 웅장한데, 연못 가운데 섬이 있는 게 독특하다. 섬 주변에 연못이 있고, 연 못 주변은 산책로다. 산책로에는 소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먼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있어서 더운 날 쉬어갈 수 있게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다.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興地勝覽)』에 법화사 관련 기록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법화사는 대정현의 동쪽 45리에 있는데, 승 혜일의 시에, '법화암가에 물화(物華)가 그윽하니, 대를 끌고 솔을 휘두르며 홀로 스스로 논다. 만일 세간에 항상 머무르는 모양을 묻는다면, 배꽃은 어지럽게 떨어지고 물은 달아나 흐른다.(在縣東四十五里 慧日詩 法華庵畔物華幽 曳竹揮松獨自遊 若間世間常住 相 梨花亂落水奔流)

법화사 주변에 여러 사물과 꽃이 있어서 분위기가 아늑한데, 바람이 불었는지 소나무를 끌고 소나무를 휘두르면서 (자연이) 스스로 잘 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어디선가 배꽃이 떨어져 흐르는 물과 함께 떠내려가는데, 그 장면은 세간에 알려질 만큼 유명했던 모양이다.


▲ 붉은 연꽃이 피기 직전이다.(사진=장태욱)

혜일은 13세기 스님인데, 법화사 관련 시를 남겼다. 제주도에 거주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법화사를 소재로 시를 썼는지 궁금하다. 소문을 듣고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만큼 법화사가 다른 지역에도 잘 알려졌을 것이다.

불가에서 연꽃을 사랑하는 건, 진흙 속에서 피어나 물 위로 꽃대를 올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난잡한 세상에서 수행을 거쳐 부처의 반열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불자들에겐 동경의 꽃이 될 수밖에.


▲ 연못 가운데 섬이 보인다.(사진=장태욱)

연꽃은 뿌리로 수중의 탄소와 질소 같은 영양물질을 흡수해 미생물 번식을 억제한다. 연꽃이 있는 연못이 썩지 않는 이유다.

연못에 연꽃이 있어야 하고, 사회에도 연꽃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난 몇 년의 부패기를 거쳐 빠르게 자정과 회복의 과정의 길을 걷고 있다. 연꽃과 같은 사람이 사회에 많다는 증거다.


우리는 퇴행 속에서도 늘 꽃대를 높이 올리고 그 위로 꽃을 피웠다. 그래서 세상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고 보니 극락은 연꽃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드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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